데미안 (Demian)
이번에 읽은 책은 '데미안'이다.
이 책을 접하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무렵 즈음일 것이다.
그때는 책에 대한 관심도 없던 터라
이 소설이 전하는 내용과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어 중간에 보다 그만두기도 하였다.
3년 후인 지금, 데미안을 완독하고 나서
어렸을 적 해석과는 또 다른 해석이 되었다.
전에는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의 성장을
주요하게 느꼈더라면,
현재는 싱클레어가 성장을 하게 될 수 있었던 '
막스 데미안', '에바부인', '피스토리우스'
등 길잡이 역할을 해 준 등장인물들을 중점으로 읽혀졌다.
이러한 점이 있기에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며
문학작품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카인과 아벨
데미안 속 가장 흥미로웠던 논쟁이다.
데미안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 나오는
'이마의 표적'에 대해 싱클레어에게 말한다.
요약하자면, 아벨을 죽인 카인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살해당할까 두려워하자 하느님이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표식'을 주었다.라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데미안은 카인이 대단한 인물이라
처벌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것을 들은 싱클레어는 선과 악의 기준에
혼동이오며 어지러워한다.
선과 악
'선과 악'에 대한 정의는 여러 학자들이
많은 연구를 하고 각각 주장하는 것도 다르다.
간단히 '흥부와 놀부'를 생각해 봐라.
흥부는 '선'을 뜻하고 놀부는 '악'을 뜻할까?
동심파괴적인 이야기지만, 흥부는 자신의 능력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낳는다.
이에 반해 놀부는 부지런한 사람으로
자수성가하며 살고있다. 라는 관점에서
내용을 이해해 보자.
'선과 악'은 인류 그 누구도 정의할 수 없는 기준이다.
하지만 규범을 만들어 최소한의 인간적인 면모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것뿐이다.
"네가 말하는 인간적인 면모의 기준은 누가 정하였는가?"
라고 나에게 질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에 딱히 반박할 수도 없는 말이다,
인간, 인간다운 삶, 인간적인.. 등등의 말은
'정의'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또 이러한 점들이
철학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소설 '데미안'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구절은
많은 사람이 알 정도로 유명하다.
진흙 속에 갇혀있는 새가 하늘을 날아오르려
힘겹게 애를 쓰는 꿈을 꾸게 된 싱클레어가
데미안에게 편지를 보낸 후 온 답장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브락사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신이다.
소설 속에는 '가정과 바깥세상'
'카인과 아벨', '새와 알' 등 대립하고 있지만
공존하는 것들을 표현한다.
"알은 세계다" 세계를 깨뜨리고 나가려는 의지의
대상이나 내면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뜻하고 있다.
다른 세상으로 나간 '새'는 '아브락사스'를 향해 날아간다.
이것을 보았을 때 힘겹게 알을 깨고 나온 새는
선으로 갈지 악으로 갈지 선택을 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뜻하는 것이라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