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y Of Sweets]
탁상 위 손 모양의 초콜릿이 녹아가고 있고,
그 아래는 어느 기업의 실시간 주가가 표시되어 있다.
당신은 이 두 가지 사실만 보았을 때
과연 어떤 작품인지 짐작이 가능한가?
예상을 하였을 수도, 그렇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마냥 달달하고 귀여운 작품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사회적 부조리에 관한 비판적인 해석을 담고 있다.
위 손 모양의 초콜릿은 노동을 착취당하는
'어린아이들의 손'을,
아래의 차트는 '초콜릿 생산 기업의 주가'를 나타낸다.
초콜릿 회사의 주가가 높아짐에 따라
램프가 켜지게 되며 어린아이들의 손이
녹아내림을 표현한 것이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달콤함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초콜릿.
하지만 그 달콤함 뒤에 가려진
어두운 진실들을 마주해보도록 하자.
전 세계 코코아 공급량의 45%를
차지하는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아동노동착취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5세~16세의 아동노동자 수백만 명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카카오 농장에서
일명 '노예 노동'을 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저 '더 많은 이윤'을 바라는
어른들의 끝을 모르는 욕심이
아이들의 창창한 미래를 짓밟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게다가 사람들은 아이들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애석하게도
초콜릿 시장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져만 가고 있다.
물론, 세계에는 아동노동착취 근절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인권 변호사 단체, 문제 발생 당국 등
글로벌 초콜릿 기업과의 소송을 하거나
아동 노동착취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 속에서도
아동 노동착취를 근절하지 못하는 데에는
'빈곤 국가'라는 근본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하루하루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삶인
극빈층은 아무리 낮은 임금이더라도,
자신의 아이들이 너무 어린 나이이더라도
집안의 형편에 보태기 위해 노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초콜릿으로 막대한 수익을 남기는
글로벌 기업들과는 달리, 원료를
생산하는 농민은 아주 적은 몫을 받는다.
점차 심화되는 빈부격차에, 그들은
사회가 만들어낸 '강제 노역 시스템'의
굴레를 벗어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달콤한 초콜릿이 가져다주는 행복감."
우리는 누군가의 행복을 착취한 결과를
더 이상 '행복'이라 정의 내려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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